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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관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 뱅자맹 콩스탕

healingpost 2025. 5. 7.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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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문장]

 

완벽하게 일관된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온전히 진실한 사람도,

온전히 악의적인 사람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

 

-  뱅자맹 콩스탕 소설 ‘아돌프’ 중에서 -

 

[인생 문장] 뱅자맹 콩스탕 (Benjamin Constant)

 

 

뱅자맹 콩스탕

뱅자맹 콩스탕(Benjamin Constant, 17671830)은 스위스 로잔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활동한 사상가, 소설가, 정치인이었다. 본명은 앙리-뱅자맹 콩스탕 드 레벡(Henri-Benjamin Constant de Rebecque)으로, 스위스 귀족 가문 출신이다. 그는 유럽 전역을 오가며 교양 있는 교육을 받았고, 일찍이 독일과 프랑스의 철학, 문학, 정치사상을 폭넓게 흡수했다. 젊은 시절에는 유럽 사상계의 중심 인물 중 하나였던 마담 드 스탈과 지적으로, 정서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었으며, 이 인연은 그의 문학과 정치 활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콩스탕은 1790년대 프랑스 혁명의 와중에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1800년대 초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권력을 장악했을 때는 그를 지지하기도 했지만, 곧 독재로 기울어가는 체제를 비판하게 되었다. 그는 나폴레옹과 마찰을 빚고 망명 생활을 하다가, 1814년 부르봉 왕정 복귀와 더불어 정치 무대로 돌아왔다. 그는 자유주의 정치 철학을 이론적으로 정립하며 입헌주의, 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를 강력히 옹호했다. 특히 1819 고대의 자유와 현대의 자유라는 연설을 통해 고대 아테네식 민주주의와 현대 시민사회의 자유를 비교하며 현대 자유주의 이론을 정식으로 제시하였다. 이후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도 문필가로서 비판적인 정치 에세이와 신문 기고를 이어갔다

 

대표적인 정치 저서로는 고대의 자유와 현대의 자유(1819), 종교의 역사에 관한 시론」,정치 원칙등이 있으며, 이는 근대 자유주의 사상의 형성에 큰 기여를 했다. 문학적으로는 아돌프(Adolphe)(1816)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으며,

사후 출간된 세실(Cécile)역시 심리소설로서 주목받는다. 그는 평생 일기를 쓰며 내면을 깊이 탐구했으며, 그 일기들 역시 철학적 성찰의 기록으로 평가된다.

 

뱅자맹 콩스탕 메달

 

  [코멘트]

프랑스 근대 심리 소설이자 뱅자맹 콩스탕 대표 연애 소설 '아돌프 (Adolphe)'

이 작품은 젊은 귀족 청년 아돌프가 연상 여인 엘리노르와 관계를 맺게 되면서 시작된다. 처음엔 단순한 유혹과 호기심에서 비롯된 사랑이 점점 집착과 책임, 의무의 문제로 번지면서 주인공은 감정과 도덕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아돌프는 엘리노르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하면서도 그녀를 떠나지 못하고, 결국 무기력과 회피로 일관하며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이 소설은 연애의 모순성과 인간 심리의 복잡함을 섬세하게 드러낸  근대 심리 소설의 선구적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2번째 작 품『세실』(Cécile)은 콩스탕 사후 1951년에 처음 출간된 미완성 소설로, 귀족 여성 세실과 그녀를 둘러싼 사회적·가정적 억압을 묘사한다. 세실은 부르주아 도덕과 남성 중심의 권위에 얽매여 고통받는 인물로, 여성의 자유와 자기 결정권에 대한 문제를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이 작품은 당대 여성의 삶을 비판적으로 바라본 선구적 작품으로 간주되며, 『아돌프』보다 더 명시적인 사회 비판을 담고 있다.

 

또한 뱅자맹 콩스탕은 평생 동안 일기를 써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일기에는 문학적 고뇌, 철학적 성찰, 연애 감정, 정치적 상황에 대한 냉철한 분석 등이 담겨 있으며, 인간의 내면을 꾸밈없이 드러낸 기록으로 평가된다. 특히 『아돌프』와 관련해서는 이 작품이 사실상 그의 자전적 고백이라는 견해가 많다. 그가 마담 드 스탈과의 관계에서 느낀 감정의 복잡함과 후회, 무기력감 등이 일기 속에 그대로 드러나 있으며, 이는 『아돌프』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콩스탕의 일기는 20세기 중반 이후 학자들에게 재발견되어, 프랑스 문학사와 심리소설 연구에서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뱅자맹 콩스탕 초상화

 

명언 (정치, 문학작품 등)

 

☆ "현대의 자유는 사적인 공간에서의 자유다. 정치 참여보다 중요한 것은, 침묵과 독서를 방해받지 않는 개인의 삶이다.”

    - 『고대의 자유와 현대의 자유중에서 -

 

☆ "우리는 사랑하지 않으면서 책임감을 느끼고, 책임감을 느끼면서 사랑을 잃어간다."

   - 소설 『아돌프중에서 -

 

☆ "가장 위험한 독재는 국민이 그것을 자유라고 착각할 때 생긴다."

   - 정치 연설 중에서 -

 

☆ "내 마음속에서 자유는 언제나 인간 존엄과 함께 움직여야 한다."

   - 일기 중에서 -

 

life quote Free Down

[인생 명언] 뱅자맹 콩스탕 (Benjamin Constant)

 

▶ book

아돌프의 사랑, 뱅자맹 콩스탕 저, 김석희 역, 문학과지성사

 

[리뷰]

1. 사랑이라는 이름의 허상 뱅자맹 콩스탕 아돌프

 

19세기 프랑스 문학의 한 복판에서, 뱅자맹 콩스탕은 인간 심리의 모순과 감정의 위선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아돌프(Adolphe)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쉽게 자기기만과 도피의 언어로 변질될 수 있는지를 냉정하게 보여주는 근대 심리소설의 출발점이다. 이 소설은 단지 연애 감정을 다룬 작품이 아니다. 그것은 자유를 욕망하면서도 그 자유를 감당하지 못하는 한 인간의 무력한 초상이며, 동시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억압하고 파괴하는 관계의 본질을 섬세하게 그려낸 문학적 해부도이다.

 

아돌프 자유를 향한 도피, 도피를 가장한 위선

 

“나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나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녀를 떠날 수 없었다.”

- 『아돌프중에서 -

 

이 문장에서 아돌프라는 인물의 심리는 그대로 드러난다. 그는 애초에 사랑이 아닌 호기심과 자만심에서 엘리노르와의 관계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가 전적으로 자신에게 헌신하자, 그는 오히려 관계의 무게에 짓눌리며 도망치고자 한다. 아돌프는 타인의 감정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면서도, 정작 그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기력이라는 전략을 택한다. 사랑하지 않지만, 떠나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한 채 그는 시간을 질질 끌며 상대를 파멸로 몰고 간다.

 

프랑스 문학 평론가 프랑수아 퓌르레는 아돌프를 자유의 이름으로 타인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근대적 이기주의자'라 칭했다." 그는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도덕적 책임의 수동성에 기대어, 스스로의 선택을 회피한다. 이는 단순한 나약함이 아니라, '현대인의 심리 구조가 만들어낸 무력한 자아의 초상'이라 할 수 있다.

 

엘리노르 자아의 해체와 감정의 자기 소멸

 

엘리노르는 단순한 피해자도, 순진한 연인도 아니다. 그녀는 주체적으로 사랑을 선택했지만, 그 선택이 점차 자기 해체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비극적이다. “그녀는 나를 향해 삶의 모든 의미를 걸었고, 나는 그녀로부터 삶의 모든 의미를 빼앗았다.” 아돌프의 독백은 결국 이 관계의 불균형과 파국을 예고한다. 엘리노르는 사랑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려 했으나, 사랑에 자아를 종속시킴으로써 오히려 존재의 근거를 잃어버린다.

 

현대 심리학에서 말하는 불안정 애착은 엘리노르의 심리 구조를 설명하는 유용한 개념이다. 그녀는 상대의 애정을 확인받기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희생하고 낮추며, 관계에 모든 것을 투사한다. 이는 곧 감정의 소모를 불러오고, 상대에게는 부담과 탈출 욕구를 심어준다. 엘리노르는 아돌프를 더욱 붙들수록, 그로부터 더욱 멀어지고 만다. 그녀의 사랑은 헌신이 아니라 '자기 소멸의 욕망'에 가까워진다.

 

관계라는 감옥, 감정이라는 위선

 

아돌프는 인간 관계에 대한 깊은 회의에서 출발한다. 겉으로는 사랑이라는 이름을 걸고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두 인물 모두 자기 욕망과 두려움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사랑은 도피처이고, 책임은 회피의 명분이며, 감정은 자기합리화의 도구가 된다. 콩스탕은 그 어떤 이상화된 사랑도, 고결한 윤리도 제시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인간이 얼마나 쉽게 감정에 속고, 상대에게 도덕이라는 짐을 지우며, 그 짐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는지를 보여준다.

 

문학평론가 폴 드 만은 아돌프를 '정념의 텍스트가 아니라, 정념의 실패에 대한 분석서'라 칭한 바 있다. 이는 이 소설이 전통적 낭만주의 소설과 분명한 선을 긋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돌프는 사랑의 도취에 빠지기보다, 감정의 회의와 자기 고백의 층위 속에서 독백을 이어간다. 결국, 이 작품은 '감정이 아닌 죄책감에 의해 움직이는 인간의 내면 기제'를 해부한 실존적 보고서라 할 수 있다.

 

사랑, 책임, 그리고 침묵의 자유

 

아돌프를 덮고 나면, 마음에 남는 것은 고통스러운 무력감이다. 사랑하지 않으면서 책임을 져야 하고, 책임을 느끼면서도 상대를 버릴 수밖에 없는 '모순된 인간 존재'. 콩스탕은 고대의 자유와 현대의 자유에서 "현대인은 '자기 내면을 방해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고 말한 바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돌프의 주인공은 그 내면의 침묵조차 끝내 자유롭게 누리지 못한다. 그는 사랑의 감정을 소유하지 못했고, 책임의 도덕에서 도망쳤으며, 자유의 이름으로 침묵하다 결국 타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아돌프는 낭만적 사랑의 종말이 아니라, '현대인의 감정의 종말' 을 미리 목격한 작품이다. 그것은 감정을 진심으로 믿지 못하고, 자유를 감당하지 못하는 우리 모두의 거울이기도 하다. 시대가 바뀌어도, 인간은 여전히 아돌프이며 엘리노르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그 사랑을 증명하지 못한 채 서 있다.

 

힐링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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