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산책 2] 당근보리밥은 고소했고, 자연의 생명력을 담아냈다
- 한강 채식주의자 2부, 몽고반점이 던진 메시지를 가슴에 담고, 채식주의 버건식당을 찾아나서다
서울의 한낮, 상암동에 위치한 비건 코스요리 레스토랑을 방문했다. 오랜만에 만난 동생과 점심 약속이었다. 그는 언론사 기자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어, 오늘처럼 여유롭게 마주 앉아 식사를 하는 건 꽤 오랜만이다. 이곳은 채식주의자를 위한 코스요리 전문점으로, 자연의 색감과 식재료의 신선함이 돋보이는 곳이다. 식당 내부는 모던한 인테리어와 은은한 조명이 어우러져 미니멀한 느낌을 준다.
점심 코스요리가 하나씩 차례로 나왔다. 첫 접시는 오렌지 샐러드였다. 싱그러운 오렌지 과육과 껍질이 어우러진 산뜻한 향기가 식욕을 자극했다. 뒤이어 나온 편두부 요리는 꽈리고추 페스토와 청귤로 맛을 더해 입안 가득 산뜻한 감칠맛이 퍼졌다. 감자떡볶이는 비건 버터와 버섯, 홍고추가 어우러져 부드럽고도 담백한 풍미를 선사했다. 당근보리밥은 고소함이 진하게 배어 있었고, 마지막으로 다시마 국수는 참나물과 수제 라유가 어우러져 깔끔하면서도 깊은 맛을 자아냈다. 디저트로는 포도곤약과 청포도 주스가 나왔고, 후식으로 흑임자 케이크가 입안에서 사르르 녹았다.
식사를 마친 후, 영혜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대화가 흘렀다. 한강의 ‘채식주의자’ 2부 몽고반점 속 영혜의 일탈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영혜의 형부와의 비정상적인 관계는 단순히 도덕적 문제를 넘어선 인간 본성의 해방과 자유를 향한 갈망을 드러낸다. 형부는 그녀의 몽고반점을 통해 억압된 욕망을 해방시키려 하고, 영혜는 그러한 시선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굴레를 벗어나고자 한다. 나무가 되고자 하는 그녀의 강한 의지는 결국 자연과의 합일을 꿈꾸는 상징적 변신이라 할 수 있다.
오후에는 한강 작가가 운영하는 독립서점 ‘책방오늘’을 방문했다. 서점은 작은 공간이지만 따스하고 고요했다. 벽에 빼곡히 꽂힌 책들 사이로 ‘소년이 온다’를 비롯해 그녀의 다른 작품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은 단순히 책을 판매하는 공간이 아니라,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이 모여 소통하는 작은 문화 거점이다.
오늘날 독립서점은 상업성보다는 가치 중심의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동네 사람들과 예술 애호가들이 모여 책을 읽고, 토론하며, 함께 사유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 자체가 문화적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독립서점이 늘어나는 배경에는 개인의 가치와 철학을 존중하는 현대 사회의 변화와 소규모 공동체의 부활이라는 흐름이 자리하고 있다.
저녁에는 직장 선배를 만나 북촌의 비건 식당 ‘꽃밥에 피다 그로서란트’를 찾았다. 이곳은 그로서란트라는 이름처럼 식자재를 판매하며 비건 음식을 제공하는 독특한 곳이었다. 유기농 한우 떡갈비 나물 비빔밥 한상과 따뜻한 황태탕을 주문했다. 모든 재료가 친환경 무농약 유기농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미쉐린 그린스타에 연속 선정된 지속 가능성을 실천하는 식당이었다. 한 상 가득 펼쳐진 건강한 요리들은 자연이 주는 생명력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식사를 마친 후, 안국동 시인과 평론가들이 자주 찾은 카페 ‘브람스’에 들러 커피 한 잔을 나눴다. 드뷔시 꿈(Reverie)의 몽환적 선율이 서서히 공간을 감싸고 있었다. 영혜가 꿈꾸던 자연으로의 변신과 자유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그녀의 일탈은 인간 존재로서의 점진적 이탈이자 자유를 향한 몸부림이었다. 도덕적 규범을 넘어선 그 행위는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사유를 던져준다.
오늘의 비건길 산책은 자연과 자유에 대한 성찰을 담은 하루였다. 한강 작가의 작품 속 영혜가 던지는 메시지처럼, 우리 역시 일상에서 억압된 자유를 찾아가는 긴 여정을 이어가야 한다.
진하고 뽀얀 국물이 마음을 녹였다 [꽃밥에 피다 그로서란트]
힐링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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